제 757 호 지루함을 택하는 사람들... ‘의도적 게으름’ 확산
지루함을 택하는 사람들... ‘의도적 게으름’ 확산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멈춤은 종종 게으름이나 무능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SNS를 통한 과도한 자극과 경쟁 속에서 심리적 피로와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휴식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단순한 쉼을 넘어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목표와 효율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의도적인 게으름을 새로운 자기 관리이자 치유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도적 게으름이란
▲ 쉬고 있는 청년 이미지(사진: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030580421)
‘의도적 게으름’은 치유적 게으름(Therapeutic Laziness)으로도 불리며, 침대에서 장시간 보내는 ‘베드로팅(bedrotting)’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글로벌 트렌드 예측 기업 ‘워스 글로벌 스타일 네트워크’(WGSN)는 이를 올해 초 2025년 최고의 미용, 건강 트렌드로 선정했으며, “생산성 압박 시대에 맞선 반(反) 웰니스 운동”으로 설명했다. 베드로팅은 단순히 침대에서 쉬는 것에 머물렀지만, 의도적 게으름은 의도적 비생산성과 죄책감 없는 휴식을 핵심으로 한다. 수동적인 스마트폰 스크롤과 달리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로-도깅 지루함(Rawdogging Boredom)’이다. ‘로-도깅’은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휴대폰, 영화, 음악, 책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저 앞에 있는 좌석 등받이나 비행기 지도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로-도깅이 일상생활로 확대돼, 젊은 세대가 일상에서 휴대폰, 음악, 책 등 모든 형태의 자극을 배제하고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형태의 게으름은 생산성 중심의 현대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읽히며, 치유 효과가 있음을 강조한다. 끊임없이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자, 사람들은 휴식을 자기 관리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에 따라 만성 스트레스에 맞서기 위해 수면, 휴식, 그리고 여유 시간을 우선시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생활이 돼버린 Z세대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특히 의미가 있다. 스마트폰 이전 시대와 비교해 보면, Z세대는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문화적 조건 속에서 자라났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지루한 듯 보이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틀어준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지속적인 디지털 자극이 청소년의 수면, 주의력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현상을 보고한 바 있다. 이는 디지털 세대가 깊은 휴식의 결핍을 자각하게 만들었고, 가장 본질적인 형태의 휴식으로서 의도적 게으름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의도적 게으름의 효과 및 한계
의도적 게으름이 과학적으로도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지루함은 뇌를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상태로 되돌리며 이 상태의 뇌는 치유적 상태가 되어 창의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지루함이 뇌의 회복과 창의력 향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근거를 보여준다.
또한 의도적 게으름은 계속되는 자극에서 벗어나 신경계를 잠시 쉬게 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번아웃이나 만성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특히 지루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조절되고 수면의 질이 개선되는 등 전반적인 에너지 수준을 회복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의도적 게으름이 모든 상황에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통해 일상적인 부분에서의 회복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의도적 게으름을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결국 의도적 게으름은 일시적인 회복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으나 장기적인 건강과 회복을 위해서는 명상·운동 등 다른 자기 관리 방식과 함께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휴식과 회복
의도적 게으름은 현대 사회의 과도한 자극과 경쟁 속에서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회복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창의력과 집중력 회복, 스트레스 완화, 수면 질 개선 등 단기적인 회복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회복 전략으로 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적 차원의 치유를 넘어 휴식과 회복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가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삶 속에서 적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과도한 경쟁과 자극이 완화되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보다 건강하고 균형 있는 삶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변의정 기자, 조윤정 기자